제 밥그릇은 제가 가지고 태어난다. 예전 예닐곱씩 낳던 자식을 보며 했던 말이다. 아마 아이를 제한 없이 낳던 시절, 그러잖아도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할 수 있었던 자구적인 위로였을 것이다. 흔히 자식은 부부의 가교라고 한다. 남남끼리 만나서 서로 마음 맞춰 살아야 하는 부부 생활은 여러모로 녹록치가 않다. 50~60년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동안 일어나는 우여곡절들, 하지만 쉽게 결혼을 깨트릴 수 없는 이유가 자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식을 키우고 또 그들이 어른이 돼 독립할 때까지 부모로서 도리와 의무, 그렇기에 개인의 감정에 치우칠 수 없는 절대적인 이유가 부부 사이에 낳은 자식 때문이라는 것에 우리 부모 세대는 물론 지금도 많은 부부들이 공감할 것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자식을 거의 예닐곱 명, 많게는 열 명 넘게까지도 낳았다. 많은 자식이 곧 재산이었던 시절이었다. 키우는 것에 그다지 막막함도 느끼지 않았던 모양이다. 제 밥그릇은 챙겨 나왔으리라고 믿었던 것일까. 지난 70~80년대엔 좁은 땅덩어리에 인구과잉 우려로 정부에서 산아제한을 했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는 구호는 어찌 보
최근 들어 이혼율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가정이 파괴되어 가족구성원들이 힘들어 한다. 평소에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가는 일이 바람직하다. 작은 일에서부터 누적되어온 불신이 크게 작용하게 된다. 명분상은 성격차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경제적 요인과 자유로운 생활을 위해서이다. 어디를 가나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사회구조의 변화는 갈등 속에서 탈출하게 만든다. 불신으로 인한 갈등이 증폭되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다양해진 개인중심적인 사고의 결과이기도하다. 부부관계는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서 오해와 갈등을 해결해 가야 한다. 부부는 깊은 관심과 사랑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손쉽게 노동을 할 수 있어 수입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혼을 선택하게 된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부부를 비롯한 가족구성원 간의 대화가 중요하다. 원만한 대화를 통해서 작은 문제부터 풀어가는 일상의 지혜를 가져야한다. 신뢰로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호 이해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문화가 절실하다. 이를 위한 정부와 학계가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진정한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서 모든 국민들이 깊은 관심을 갖고 노력해 가야할 때이다. 인간은 사회적 기능과
오는 8월 1일부터 강사법이 시행된다. 강사법은 2010년 고달픈 시간강사의 비애를 호소하며 생을 마감한 조선대 강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그 이듬해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강사법)이 마련되었다. 이후, 전례 없이 긴 유예기간을 거쳐 드디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강사법의 핵심 내용은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 방학기간에도 급여를 지급하고 1년 이상의 임용과 3년 동안의 재임용 절차를 보장하는 시간강사에 대한 처우 개선을 담고 있다. 하지만 처우개선이라는 강사법의 취지에 맞게 강사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시행을 앞두고 강사들이 대량 해고되면서 강사법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논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사법 관련해서 이런저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강사를 직접 고용하는 사용자 측인 대학가는 가중되는 재정난을 호소하며 기존 강사들을 해고시키거나 신규 임용을 제한하고 있다. 피해는 강사뿐만이 아니다. 강의를 들어야 할 대학생들의 과목이 축소되어 수강 학점 이수가 어렵게 되었다. 심지어 졸업을 못하게 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올 학기 초 대학가의 수강신청 대란도 강사법이 만들어낸 풍경 중 하나이
평소에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치고 성공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한 권의 책을 읽고 타인의 생각, 경험, 지식 등을 빠르면 몇 시간, 길게는 며칠 만에 터득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독서가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자 축복이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한글 창제도 독서와 연구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CEO로 평가 받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잘 알려진 독서광이었고, 하버드 대학 졸업장보다 더 소중한 것이 책 읽는 습관이라고 말한 빌게이츠 또한 독서광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나폴레옹 또한 전쟁터에 나아가면서 수레에 책을 싣고 말 위에서 책을 읽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독서습관이 부자와 가난한 자를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부자 되는 습관의 저자 토머스 콜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일상습관이 다르다고 한다. 그는 223명의 부자와 128명의 가난한 사람을 대상으로 습관을 조사했는데 부자와 가난한 자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부자들은 매일 30분 이상씩 책을 읽는다는 대답이 88%에 달한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2%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우리가 소위 말하는 세상에서 잘 나간다는 사람들의 추락을 가끔씩 보면서 아, 저 사람이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어느 유명 아나운서의 지하철 도촬로 온라인상에서 뜨거웠다. 남들이 다 고대하는 사회적 성공과 명망을 양손에 쥔 사람의 추락이라 더욱더 사회적 파장이 큰 듯하다. 인간의 내면에는 모두 그림자를 갖고 있으며 그림자는 자아, 곧 인간의 어두운 면을 말한다. 이 그림자는 자신의 일부이지만 스스로 거부하고 억압해 온 내면의 세계이고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존재하는 한 영원토록 싸워야 될 숙제일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다양한 배역으로 무대에 선 배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교수, 어떤 사람은 공무원, 어떤 사람은 사업가, 어떤 사람은 의사, 어떤 사람은 노동자, 어떤 사람은 자영업자, 어떤 사람은 판검사, 어떤 사람은 음악가, 어떤 사람은 변호사로서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가면을 철저히 쓰고, 그 가면 아래에 있는 그림자를 억압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의 발단으로 우리가 쓰고
21세기 접어들어 국가정책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출산장려 정책이다. 현재 남한 인구는 5100만 명이다. 남한의 인구감소는 국가존폐 위기라는 불안한 예측까지 하게 된다. 21세기 들어 출산율 감소현상은 사회적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뚜렷해졌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합계출산율이 0.98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이다. 정부가 출산장려정책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가 결혼하던 1980년 이전에는 아이가 태어날 때 제 밥그릇은 제가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었지만, 지금 그런 이야기는 웃자고 하는 이야깃거리도 못된다. 농경사회에서는 누구나 늙으면 자식에게 노후를 의지해서 살다 죽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노후는 자신이 책임져야 되고 거동이 불가능하면 너나 나나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가야한다. 그러니 자식이 꼭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젊은이들이 자식을 낳아야 할 이유를 정책적으로 제공해 줘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출산장려정책은 백약이 무효가 될 것이다. 1970년대 전국 전국방방곡곡에 “잘 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 노래가 울려 퍼졌었다. 이 시절 새마을운동과
여행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설렌다. 왜 그럴까. 여행을 찌든 일상에서의 탈출, 스트레스의 해소, 재충전의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여행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한데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려 생각하면 여행이 우리에게 얼마나 유익한 깨달음을 주는지를 알게 된다.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거의 비슷한 일을 반복적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고정된 틀 안에 갇혀 새장 속의 새의 신세로 전락한다. 오랫동안 새장 속에 갇힌 새는 자신이 과거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녔던 기억을 잊는다. 새장 속에 갇힌 새를 갑자기 풀어 놓은들 이미 나는 방법을 잊어버린 새에게 창공은 의미가 없다. 여행은 우리에게 날갯짓을 잊지 않도록 하는 필수 교육과정이며, 생각의 자유를 허락함으로 답답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지 않게 만든다. 그러나 무조건 일상에서 탈출하는 여행만으로는 안 된다. 여행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그저 스트레스나 풀고 돌아오는 정도로 그친다면 특별히 나아질 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하며 그곳의 인문과 지리를 접한다. 주지하다시피 인문은 사람들의 정서와 생각, 행태, 인심, 예술 혼 등 인간이
개는 인간이 길들인 최초의 동물이다. 그래서 개는 최초의 가축(家畜)이다. 시기도 농업혁명 이전이라고 한다. 인간과의 친함이 유난히 강한 개는 사냥과 싸움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활용 가치가 매우 높았다. 인간과 소통이 가장 잘되는 동물로 주인을 따르는 충성스러운 존재였다. 언제나 살갑게 대하면서 개는 인간의 삶 깊숙이 들어와 짐승 중 가장 친숙한 존재로 자리매김하였다. 고고학적 유물뿐만 아니라 고대인(古代人)들의 회화(繪畫)에서도 볼 수 있는 개는 인간과 유독 친밀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옛날에도 개가 죽으면 사람처럼 예식에 따라 매장(埋葬)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도 정승이 죽으면 문상을 안 간다는 속담도 이를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애완견(愛玩犬)에 대한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사회적 동물 인간의 역사와 개의 역사는 동반자(同伴者) 관계로 유서가 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고, 그 종류 따라서 대접도 달랐다. 마치 그 옛날 신분(身分)에 따라 대접이 달랐던 인간처럼 개도 일상(日常) 속에서 견(犬)과 구(狗)로 구
현대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언제부턴가 우리는 사회적 지위와 물질적 풍요를 가치기준으로 인간을 평가하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고 있는 것 같다. 밖으로 보여 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뿐 사람의 내면에 담겨 있는 가치와 행복에는 별로 관심을 두려하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우리는 내려놓음과 비움,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고 절제하는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이다. 따라서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여 최선을 다하면서 절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내려놓고 마음을 비움으로서 오히려 자유로워질 수 있는 내면의 행복을 갖는 것이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이고 진정한 부자로 사는 길이다.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은 과거 세대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미래 세대는 현재의 세대가 있기에 가능하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가치 없는 것이 없다. 하찮은 풀과 나무에도 생명이 있고 존재 이유가 있듯이 높고 낮음과 있고 없음을 떠나 이 세상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소중한 존재이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과 방식만을 주장하고 강요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며, 내가 아닌 우리가 중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하는데, 우리네 인생에서 봄날은 과연 언제일까. 지난날을 반추해 보면서 정말 우리가 행복의 절정을 이루고 별이 반짝반짝 빛났던 시기가 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질풍노도의 시기로 젊은 날의 꿈과 희망으로 점철되어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열정이 가득했던 20대, 설익은 자신감과 포기가 함께 교차했던 30대, 이 시기는 때론 좌절감을 맛보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가지치기를 해야 했던 취사선택(取捨選擇)의 시기였던 것 같다. 쓴맛과 단맛을 함께 알게 되면서 반드시 마음먹은 대로 인생이 전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포기와 체념이라는 단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40대, 인간사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겸손과 함께 인생의 묘미를 알게 되는 50대, 우리 모두는 각자 인생의 봄날이 다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속에는 버리지 못하고 쌓여 있는 묵은 감정이 많아지는 법이다. 미움, 분노, 원망 등을 버려야 새로운 것들로 채울 수 있다는 지혜도 터득하게 되는 그날이 인생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중년 이후의 시기일 것이다. 집안에 쓸데없는 것들을 과감히 버려야 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