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부터 조선민화·호림의 명품까지…올봄 꼭봐야할 고미술展

  • 등록 2025.04.13 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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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최대 규모 겸재 정선 전시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책가도·문자도 등 조선민화 총망라 전시
호림박물관, 국보 8건·보물 54건 한 자리에서 소개


(서울=연합뉴스) 봄철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쉽게 보기 힘든 고미술 전시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경기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에서는 겸재 정선의 대표작들을 모은 대규모 전시가 진행 중이다. 호암 전시가 조선 최고 화가의 걸작들을 모은 전시라면 서울 용산의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민화전은 화려하고 세련된 궁중회화에 비해서는 소박하고 수수하지만 그만큼 자유롭고 독창적인 민화의 다양한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자리다.

호암미술관, 간송미술관과 함께 국내 3대 사립박물관으로 꼽히는 서울 청담동의 호림박물관에서는 호암 이병철, 간송 전형필과 함께 한국의 대표 수장가로 꼽히는 호림 윤장섭(1922∼2016)이 수집한 국보 8건, 보물 54건 등을 볼 수 있다. 


◇ 푸른색·분홍·무지개…겸재 정선의 색(色) 

호암미술관의 정선 전시는 규모와 전시 작품의 수준에 있어 다시 보기 힘든 전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선 작품의 양대 소장처라고 할 수 있는 호암미술관과 간송미술관이 힘을 모아 만든 전시다. 정선이 진경산수화로 유명한만큼 아무래도 국보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에 먼저 관심이 쏠리지만 잘 알지 못했던 정선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좋은 작품들이 많다. 

전시를 기획한 조지윤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정선은 색을 굉장히 잘 썼다"면서 "강세황이나 김홍도, 심사정 등 유명화가 중 정선만큼 색을 쓴 작가는 없었다"고 말했다.


대표작 '금강전도'에서는 금강산의 수많은 봉우리 위에 푸른색으로 하늘을 표현했는데 조 실장은 "조선시대 회화에서 이렇게 푸른색을 쓴 예가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과 한강 주변의 명소를 진경산수화로 담은 화첩인 '경교명승첩'에 실린 '홍관미주도'에는 '무지개 아래 미불의 배'라는 제목처럼 무지개가 등장한다. 역시 우리나라 그림에서 드물게 일곱빛깔무지개를 표현한 사례다. 경교명승첩 중 소를 탄 선비가 사찰을 찾아간 모습을 그린 '사문탈사'에서는 절의 벽을 분홍색으로 칠하기도 했다. 중국 고사에 자주 등장하는 여산(廬山)의 초당을 그린 '여산초당'에서도 초당의 난간과 동자의 봇짐에 사용된 붉은색이 두드러진다. 


진경산수화가 상상 속 관념적인 산수가 아닌 실제 풍경을 토대로 했듯이 정선이 그린 고사인물도 속 인물도 중국풍이 아닌 조선 사대부의 모습으로 담겼다. 중국 북송의 서화가 임포의 이야기를 담은 '고산상매'속 임포의 모습이나 '여산초당' 속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모습도 모두 조선 선비의 모습으로 그렸다.


정선은 초상화나 인물화 그리는 것을 꺼렸지만 이번 전시에는 자신을 그려 넣은 것으로 보이는 그림도 나왔다. 경교명승첩 중 사랑방 앞 툇마루에 앉아 붉은 해당화를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을 그린 '독서여가도'에 등장하는 인물이 자화상으로 추정된다. 사랑방 안에는 서책이 쌓인 책장이 있어 정선이 학문하는 선비라는 점을 암시한다. 책장 문에 그려진 그림이나 인물이 쥐고 있는 부채 속 그림도 모두 정선의 그림이다. 


◇ 책가도부터 동물그림까지…소박하지만 개성 넘치는 조선의 민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조선민화전에서는 18세기 후반∼20세기초 책가도와 문자도, 백선도, 어해도 등 다양한 소재의 민화들을 고루 살펴볼 수 있다.

책가도는 책장에 서책과 문방구, 골동품을 그려 넣은 그림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책가도의 대가로 알려진 이택균의 작품과 함께 여러 점이 전시된다. '책거리12폭병풍'(1918)에는 분홍색 등 화사한 색감이 눈에 띄는 가운데 서양식 탁상시계와 영어가 적힌 담뱃갑 등도 등장해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책가도 속 숨은 인장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책가도는 궁궐에서 시작된 그림이라 궁중 화원들이 자신의 인장을 그림에 찍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화가들은 책가도 속 기물에 숨겨놓는 방법으로 인장을 남겼고 이런 방식은 민화에서도 발견된다. 이택균의 책가도에서는 오른쪽 윗부분에 인장이 숨어있다. 


유교의 핵심 윤리인 '효·제·충·신·예·의·염·치'를 변형시킨 문자로 구성된 문자도, 한 화면에 여러 점의 부채를 그린 백선도 병풍 등도 나왔다. 

흔치 않은 도상이 담긴 그림들도 흥미롭다. '선면 이무기'는 부채에 이무기를 그린 그림이다. 용이 되기 전 단계의 동물로, 1천년 동안 물속에서 수행을 마치면 여의주를 얻어 승천한다는 이무기는 신화 속에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 회화로 그려진 사례는 매우 적었다는 점에서 희귀한 그림이다. '하상선인도'는 새우를 타고 파도 위를 지나가는 신선을 그린 그림으로, 갈대나 물고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모습의 그림은 많지만 새우를 타고 가는 그림은 흔치 않다. 

물고기가 변해 용이 되는 모습을 담은 어변성룡도는 과거 시험의 합격을 기원하는 의미의 선물로 주고받았던 그림이다.


민화 특유의 해학적인 도상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삼국지의 장면과 신선도를 결합한 '고사인물도6폭병풍'(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에서는 해학적인 인물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봉황과 호랑이, 토끼를 함께 그린 19세기 '금수도' 속 호랑이나 19∼20세기초 '호작도4폭병풍' 속 장난치는 듯한 암수 호랑이 한 쌍 모습 등도 흥미롭다.

20여만명으로 추정되는 국내 민화 인구를 반영하듯 전시장에는 평일에도 관람객이 많다. 작품 접근을 제한하는 다른 전시들과는 달리, 작품과 관람객 사이를 최대한 좁혀 작품의 세부(디테일)를 자세히 볼 수 있다.


◇ 명품 도자와 회화·사경…군더더기 빼고 유물에 집중한 '호림명보'

호림박물관은 서울 강남구 신사분관에서 대표 유물 100여 점을 모은 '호림명보'(湖林名寶)를 진행 중이다. 

호림 윤장섭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명품' 도자와 회화, 전적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보 8건, 보물 54건 등 교과서에 나올 법한 유물이 가득하다. 

박물관 관계자는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을 비롯해 지정 문화유산을 모두 모아 선보이는 건 2006년 열린 '국보전'(國寶展) 이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건물 4층에서 시작하는 전시는 '국보' 두 글자의 의미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관람객들은 납작하고 둥근 몸통의 편병(扁甁) 위로 연꽃이 활짝 핀 연못과 헤엄치는 물고기를 장식한 '분청사기 박지연화어문 편병'을 먼저 만날 수 있다. 


흰색과 회갈색의 대비가 도드라지며 분청사기 중에서도 제일로 꼽히는 유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1916∼1984)가 '비싸더라도 꼭 입수하라'고 조언했다는 '백자 청화매죽문 유개항아리' 역시 호림이 자랑하는 컬렉션이다.

'수행의 예술'로 여겨지는 사경(寫經) 작품도 눈을 사로잡는다. 사경은 불교 경전을 유포하거나 공덕을 쌓기 위해 경전을 베끼는 일, 또는 베낀 경전을 일컫는다. 

조선 전기인 1443년에 일본으로 넘어간 뒤, 500년이 지나 고국 품으로 돌아온 국보 '백지묵서 묘법연화경'은 호림이 특히 아꼈던 유물로 알려져 있다. 


감색 종이 위에 금빛 글자를 정성껏 써 내려간 보물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은 전체를 펼친 상태로 전시해 그 면면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유물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군더더기'를 뺀 점이 돋보인다.

전시장 장식은 가급적 없애고, 유물이 가장 돋보이도록 연출했다. 전시품을 자세히 설명하는 대신 정보무늬(QR) 코드를 넣어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강조했다. 



국제일보 기자 kjib@kookje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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