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오랜 시간이었다.
난생처음으로 부득이하게 독립을 하게 돼 지낸 세월이.
이제 와서 다시 동생이랑 살면서 처음 듣게 되는 얘기들이 있다.
원래부터도 몸이 약한 사람이었지만,
그래서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엔 항상 가사도우미가
상주했던 시절도 있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출퇴근 하시는 도우미로 오시게 되기도 하였다.
난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나 스스로 안도감을 만들고 방치시켰다.
철이 없었던 나이였지,라고 하면서.
너무 어리석었다.
내가 나가서 사는 동안 병환이 더 깊어진 것도 모르고,
아니, 모른체했겠지!
그렇게 나가서 산지 7년 만에 엄마는 가셨다.
병원 들어가시기 일주일 전에 안부차 전화를 했다.
목소리가 안 좋았다.
〃어디 아파?〃하고 물었다.
〃아니, 그런데 내가 오래 못 살 거 같아..〃하고
엄마가 내게 말했다.
난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해?〃라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병원에 들어가셨고,
거짓말처럼 두 달 만에 떠나셨다.
그 해 가을에.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함께 했다.
그 장면은 외상 후 스트레스처럼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죄책감과 함께.
오늘 동생이랑 아빠 저녁상을 차리다가
옛날 얘기가 나왔다.
〃언니! 아빠가 미역국을 싫어하는 이유가,
엄마랑 아빠랑 둘이 살 때 엄마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할 때
아빠가 자주 가시던 반찬가게에서
매일 미역국만 사서 드셔서 지겨워지신 거래.〃
사실, 오늘 점심때 내가 끓여 논 미역국을 건더기만 남기시고
국물만 드시길래,
내가 아빠에게 짜증을 냈다.
마음 어딘가에서 뭉클한 분노가 울컥하며
치밀어 올랐다.
나에게 또 화가 난 것이었다.
넌, 가족의 진심을 어디까지 헤아리고 있었던 거니?
김별 | 글 쓰는 연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