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지정학적 위치와 자연환경, 지나온 역사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고 하겠다. 스위스의 인구는 780만 명이고 면적은 남한의 40% 정도이니 경상도와 전라도를 합한 정도의 크기이다. 그리고 국토의 75%가 산과 호수이다. 지하자원도 없는 무자원 국가여서 우리처럼 유일한 자원이 사람뿐이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4개국에 둘러싸여 늘 외세에 시달리며 지내왔다. 그래서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가파른 산비탈에 목초를 키워 소를 길러 우유와 치즈로 겨우겨우 살았다. 그래서 아낙네들은 집을 지키고 사내들은 외국에 용병으로 나가 목숨을 담보로 외화를 벌어야 했었다. 그래서 스위스는 자신들의 역사를 “생존을 위하여 피를 수출하였다.”라고 쓰고 있다. 어려웠던 지난 역사를 후손들이 잊지 말자는 다짐일 것이다.
스위스(Suisse)의 산업을 일으킨 것은 시계 산업과 섬유 산업이다. 스위스의 시계 산업은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운동과 관계가 있다. 개혁자 존 칼빈이 제네바에서 개혁의 깃발을 들었다. 박해받던 프랑스 개신교도(改新敎徒) 위그노들(Huguenots)은 박해를 피하여 스위스의 칼빈을 찾아왔다. 그들은 빈손으로 왔지만 시계 만드는 기술이 있었다. 칼빈은 그들에게 한 골짜기를 떼어주며 시계 산업 일으키는 것을 도와주었다. 기록에 의하면 1785년에 2만여 명이 시계 산업에 종사하여 연간 9만 개 정도의 시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늘날 스위스라고 하면 관광과 기술이다. 그들은 쓸모없는 가파른 산들을 관광자원화 하고, 영국에서 방직기계를 수입해서 스스로 방직기를 만들었으며, 방직기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세계 최초로 디젤엔진을 만들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계산업을 발전시켜 스위스 기계제품 하나하나를 명품 브랜드(brand)로 만들었다. 지난날 유럽의 최빈국(最貧國)에서 오늘날 최부국(最富國)으로 발돋움한 스위스로부터 우리나라는 배워야 한다.
나폴레옹 장군이 남긴 명언이 있다. “인류의 미래는 인간의 상상력과 비전에 달려 있다.” 곱씹을수록 실감나는 말이다. 상상력(想像力)은 역사를 만드는 추진력이 된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문화를 일으키고, 사람 살만한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창출(創出)한다. 국토가 넓다고 반드시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자원이 많다고 반드시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다. 부강한 나라,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은 가치관, 추구하는 목표, 미래를 창조하여 나가는 상상력과 비전을 지닌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남미(南美)와 북미(北美)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17세기 같은 시대에 양쪽의 개척이 시작되었다. 같은 유럽 사람들이 같은 시대에 진출하여 개척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 결과가 어떠한가. 남미는 침체되고 뒤떨어진 사회가 되었고, 북미는 세계 제일의 국가, 선진사회를 이루고 있다. 무엇이 남미와 북미를 그렇게 달라지게 하였는가.
그들이 지닌 가치관과 이상과 전략의 차이에서 달라졌다. 남미로 간 사람들은 대부분 라틴족 계열이었고 북미로 간 사람들은 앵글로색슨족이었다. 남미로 간 라틴민족 계열의 사람들은 황금을 찾아 갔다. 그러나 북미로 간 앵글로색슨족은 사상을 찾아, 미래의 비전을 따라갔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설명이 필요 없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다. 그런 점에서 김구 선생 같은 선각자는 오늘날 한국의 사표(師標)가 될 수 있다. 김구 선생은 살아생전 거듭거듭 말하기를 무력으로 강한 나라가 아니고 경제로 부강한 나라가 아니고, 문화로 가치관으로, 인간다운 도덕과 윤리로 세계 다른 나라들이 따르는 기준이 될 나라를 세우자고 역설하였다.
김구 선생은 잘사는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사는 나라를 세우자고 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국가경영, 사회경영, 사업경영, 가정경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가치가 아니겠는가.
얼마 전 뉴스위크(Newsweek)지에 일주일에 5일 동안 하루 1만2천 보(步) 걷기를 계속하면 어느 단계에 이르러 세포가 변화된다는 기사가 실렸다고 한다. 세포 특히 혈관세포가 건강해져 심장병, 뇌졸중 같은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통계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사망률이 높은 병 1위가 심장병이고, 2위가 암, 3위가 뇌졸중이라고 한다. 이 통계에 따르면 1위와 3위가 혈관에 관계되는 병이기에, 혈관의 건강이 우리 몸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동양에서도 예로부터 건강장수의 비결로 하루에 일만 보 걷기를 강조하여왔다. 산에서 7㎞를 걸으면 일만 보(一萬步)가 된다. 그러니 주 5회 7~8㎞를 걸으면 세포가 건강하게 바뀐다는 뜻이 된다.
현대의학(現代醫學)이 증명하는 바에 따르면 건강을 새롭게 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걷기와 금식(禁食)이다.
일본인으로 2016년 노벨상(생리의학상)을 받은 오스미 요시노리 박사의 전공이 금식과 걷기였다. 50년간 그 주제로 열심히 연구하여 사람이 금식하는 중에 면역세포가 활성화되어 병든 세포들이 치유되고 회복된다는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다.
사람마다 1년을 살아온 삶의 걸음을 뒤돌아보라면 다양한 삶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365일이란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졌다. 부자이건 빈자이건 남자이건 여자이건 어린아이가 되었건 어른이 되었건 24시간 365일은 평등하게 주어졌다. 그 하루하루를 책처럼 생각하고 소중하게 읽어 온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일기장이라고 생각하고 삶의 마음을 기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어떤 이는 강물처럼 생각하고 강물을 따라 바다를 향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산이라고 생각하고 더 높은 하늘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삶의 목표는 강을 따라나섰건 산을 향해 걸었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초식동물은 무리를 지어 살아간다. 이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육식동물은 큰 무리를 지어 살아갈 수가 없다. 모두 먹이 사슬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멸종되는 동물이나 식물은 새로운 병을 이겨내지 못하거나 먹잇감을 찾지 못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구조를 보면 지금 우리가 겪는 인구 절감의 벽도 먹고살기 힘든 이유가 가장 큰 원인이 되기 때문이라고 인식된다.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결혼을 했다고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아이를 키워낼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은 크게 몇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자연의 흐름을 지켜보는 일, 역사의 흐름을 지켜보는 일, 사람의 삶을 지켜보는 일, 동물의 삶을 지켜보는 일, 그 지켜보는 과정에서 변화가 발생하고 흐름이 바뀌고 있다면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된다. 지구 역사 속에서 근대 100년은 그 변화의 속도나 변화의 방향이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두드러지게 크고 다양하게 변했다. 통신의 발달, 교통의 발달, 과학의 발달, 주거문화의 발달, 의료기술의 발달 등은 앞으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고 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걸 제시하고 있다.
이제 세상은 거미줄처럼 복잡한 세상으로 변해있다. 한 개인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구조로 변해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세상을 살아갈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복잡해도 삶의 뿌리인 이 지구(地球)에 사람이 살아가야 한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고 있다. 1년 365일이란 시간이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우주의 질서가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이 지구를 살아온 시간이 6천 년이라고 한다. 태풍이 불거나 지진이 일어나는 이유는 이 지구가 제 몸을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건축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지구의 몸부림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그 위험을 피해 삶의 터전을 옮겨온 것이 바로 인류(人類)의 역사이다.
1년이란 시간에는 많은 부분이 담겨 있다. 지구가 태양을 돌며 처음 제 자리에 찾아왔다는 의미도 있고 새롭게 다시 첫걸음을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하겠다. 사람들은 그 1년을 한 해가 다 갔다고 하고 한 해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또는 한 살 더 먹는다고 말한다. 사람에게 삶의 나이테는 지혜를 깨닫게 해 준다. 1년을 살았다는 것은 내 몸이 지구라는 가장 아름다운 별에 앉아 태양을 한 바퀴 돌고 왔다는 의미이다. 지구라는 별은 이 우주 공간에 유일하게 생명이 살아간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한 살 나이만 더 먹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한마디 말을 해 주고 싶다. 우리는 지구라는 별을 타고 태양을 한 바퀴 돌며 우주여행을 하고 왔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해 보라는 것이다. 이유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이유가 있어야 목적이 생긴다. 이 세상이 너무나 가혹하게 삶의 목적을 작게 만들고 있다.
1년 365일, 나는 우주여행을 하고 살았다.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자. 나는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 지구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한 살 나이를 더 먹은 게 아니라 지구라는 별을 타고 우주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한 번 더 바라보라. 낮달이 지나가는 하늘을 바라보라.
1년 365일, 그 시간 속에는 아무도 읽지 않는 당신만 읽는 시간이라는 글자를 읽으라고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는 것이다. 그 우주 공간을 바라보지 못하니 외로운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사회적 논란으로 가장 큰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이 이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념(理念)이란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과 견해를 말한다. 구 소련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면서 국제사회도 이념적 질서가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념이라 함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갈래의 체제를 대표적으로 말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남과 북이 대치하면서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고 전쟁이 종식되지 않고 항상 이념적 긴장감이 형성되어 있는 나라이다. 그 이념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 본다. 물과 불은 분명 서로 상극의 관계로 형성된 물질이다. 그러나 물은 불이 있어야 사람 삶에 윤택함을 더해준다. 불은 물이 있어야 불의 기능을 확장 시킬 수 있다.
물은 불과 조화를 이루었을 때 에너지를 발생되게 하고, 불은 물을 끓여 에너지를 만든다. 물과 불은 분명 상극의 다른 물질이지만, 사람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냄으로써 효과적인 전기 에너지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지금껏 이 지구상에서 물과 불의 발전에 따라 인류(人類)의 삶이 발전되어 왔다. 불을 더 신봉하는 사람이 되었건, 물을 더 신봉하는 사람이 되었건, 물과 불을 조화롭게 다스리지 않고는 사람의 삶이 행복(幸福)해지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가난한 나라는 물과 불을 발전시키지 못하여 왔다. 불의 에너지를 발전시켜온 것은 나무와 같은 땔감부터 석탄, 석유, 가스 등을 통한 발전 시설이 있고, 물의 에너지는 물레방아나 수력 발전같이 발전이 되어 왔다. 수력 발전소, 풍력 발전소, 핵 발전소, 태양광 발전소 등이 모두 전기 에너지를 얻고자 하는 방법이다.
이 지구는 수만 가지 식물과 동물, 광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도 그 속에 한 부류이지만 이 지구를 지배하고 관리하는 주체로 살아왔다. 물과 불을 발견한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앞으로의 시간은 이념의 갈등보다도 더 큰 물과 불의 부족이 있거나 물과 불을 조화롭게 발전시키지 않으면 불행을 자초(自招)할 것이다.
친환경은 환경을 지키는 일이고 자연 파괴로부터 사람의 행동을 막아내는 일이다. 그 속에서 물과 불을 통해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야 한다.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굳게 믿으며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신념이라고 하는데 신념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시련과 좌절을 겪는다. 그때 자신을 믿는 굳은 신념이 없다면 냉혹한 현실 앞에서 고통과 슬픔으로 무너지게 된다. 그러나 굳은 신념이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극복할 용기를 품고 있기 때문에 내용이 무엇이든 스스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념(信念)은 어떤 일에 자신이 있다는 생각이나 의식의 초석이기도 하고 성공이라는 결과에 대한 매력과 가치이기도 하다.
개미 두 마리가 있었다. 그들은 친구의 시신을 들것에 실어 먼 곳으로 옮기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숲속 작은 길에서 개미들은 넘어질 고비를 수차례 넘기면서도 친구의 시신이 들것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그들의 머릿속엔 오직 시신을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을 것이다. 개미들에게 그 일은 하늘을 오르는 것만큼이나 힘들었지만 굳은 신념이 있었기에 친구의 시신을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묻을 수 있었다. 우리 속담에는 “개미가 절구통을 물어간다(개미는 여럿이 힘을 합쳐 자기 몸보다도 수십 수백 배 큰 물체를 끌고 간다는 의미로 설마하고 생각하던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예방하라는 말), 큰 방죽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매우 적은 힘으로 큰일을 이루었다는 말), 개미 금탑 모으듯 한다(재물을 조금씩 알뜰히 모은다는 뜻으로 부지런히 벌어서 재산을 모으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 등으로 개미를 통해 신념의 힘을 배우기도 했다. 주변에는 태어날 때부터 남부러울 것 없는 호사를 누리며 사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들도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이 닥치면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예고 없이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될 무서운 공포 앞에선 누구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때 느끼는 극도의 공포(恐怖)는 생각을 왜곡시키고 삶의 참모습과 의미를 흔들 것이다.
인간관계론의 대부인 미국의 데일 카네기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교사, 세일즈맨 등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그 후 그는 대화 및 연설기술을 강연하면서 성공 처세학의 최고 권위자가 되었다. 데일 카네기는 성공에 대하여 “모든 기적에는 시종일관 변치 않는 신념이 있으며, 자신의 신념을 굳게 믿고 그것을 굳건히 하는 것이 성공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라는 말을 했다. 평상심을 갖고 신념에 따라 최선을 다한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도 내면의 문을 열어놓고 깨어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무언가를 이루고 세상 사람들의 성공모델로 등장하는 사람들의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그것은 할 수 있다는 정신을 갖고 열정적으로 살았다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급격한 사회 변화와 다양한 경계를 경험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신념과 이성, 열정과 침착함을 잃지 않고 올곧게 주어진 길을 가기란 그리 쉽지 않다. 예기치 않은 사건에 흔들리기도 하고, 현실의 요란함에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신념이 강한 사람은 아무리 큰 시련과 고통이 닥쳐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아픈 만큼 성장할 것이라는 신념으로 언젠가는 자신이 정한 목표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과 새로운 약속을 한다. 거듭 성장을 위한 스스로의 다짐임에도 불구하고 작심삼일(作心三日),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는 경우는 신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성공의 초석은 신념이다.
김병연 |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