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뉴스) "(해외에서) 한국 그림책에 관심이 정말 많아요. 저도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을까 궁금할 정도로요. 공통적인 평가는 한국 그림책이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고 하더라고요."
'아동문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이하 안데르센상) 수상자인 이수지 작가는 한국 그림책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관심받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작가는 28일 부산 벡스코에서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 일환으로 강연한 뒤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그림책은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고, 그래서 더 에너지가 넘친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서점에 가 보면 신간보다도 오히려 고전으로 분류할 만한 옛날 그림책들이 더 주목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우리나라보다 그림책의 역사가 조금 더 길다 보니 어린 시절 재미있게 봤던 그림책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부모 세대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우리나라는 그런 세대가 나오지 않아서 비유하자면 막 피어오르는 상태라고도 볼 수 있고, 소위 말하는 '고인 물'이 없기 때문에 더 에너지가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장점 덕인지 한국 그림책 작가들은 최근 몇 년 동안 괄목할 만한 수상 실적을 냈다.
이 작가가 202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안데르센상(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을 받았고, 백희나 작가는 2020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을 받았다. 이금이 작가는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한국과 미국 이중 국적인 차호윤 작가는 올해 칼데콧상 명예상을 받았다.
다만 이같은 성과에도 작가들의 생활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이 작가는 "자기 본업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작가를 꼽는 데는 다섯 손가락도 필요하지 않고 엄지와 검지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다"며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구조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출생률 감소로 학령 인구가 점차 줄어드는 상황도 그림책 작가들의 어려움을 가중하는 여러 원인 중 하나다. 이 작가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꼭 어린이를 대상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어른도 그림책을 보는 문화가 생기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는 그림책을 '어린이부터' 보는 책이라고 습관적으로 말하고 있고, 어린이와 어른을 특별히 구분해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는다"며 "여러 강연을 다니면서 성인 독자의 비율이 전보다 커진 것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서울국제도서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등에 꾸준히 참석하며 독자들과 소통해왔다.
그는 이날 도서전에서도 독자들을 만나 '파도야 놀자', '그림자 놀이' 등 대표 작품의 의미와 창작 과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린이는 모든 색'을 주제로 한 강연은 미리 마련된 80개 좌석이 모두 채워졌고, 미처 신청하지 못한 독자들은 선 채로 강연을 들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이 작가는 강연에서 색을 이야기의 요소로 활용한 배경을 설명했다. 2008년 출간한 그림책 '파도야 놀자'는 초반부 먹색으로만 세상을 표현하다가 주인공인 아이가 파도에 마음을 여는 순간을 온통 파란색으로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이 작가는 "그림책은 워낙 분량이 짧아 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최대한 활용한다"며 "한두 가지 색만 사용함으로써 '이 색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고 독자가 느끼는 순간 색이 논리를 구성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도서전은 국내에서 열리는 첫 국제아동도서전이다. 그간 해외 유수의 국제아동도서전에 참석해온 이 작가의 평가가 궁금했다.
그는 "아직 도서전을 구석구석 보진 못했다"며 "첫날이고 1회이다 보니 역시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도서전은 저작권 거래에 초점을 맞추고 어떤 도서전은 독자와의 만남을 즐기는 데 주안점을 두는데, 이번 도서전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한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 작가는 또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 가 보면 가장 '트렌디'하고 '핫'한 작가가 참석하고, 그만큼 현재 우리에게 중요한 이슈가 뭔지 고민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며 "부산국제아동도서전도 그런 도서전이 되면 좋겠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