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헌정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7일 의결 정족수 부족에 따른 표결 무산으로 귀결됐다.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은 2004년 국회를 통과했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두 달 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고, 이듬해 3월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 정국을 같은 보수정당 출신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 당시와 비교하는 시각이 많다.
이른바 여권 내 '이탈 세력'의 규모와 탄핵안 표결 전 형성된 사회·정치적 상황이 두 대통령의 탄핵안 운명을 갈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8년 전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에는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비주류 세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비박(비박근혜)계가 중심이 된 이들은 일찌감치 탄핵 찬성 입장을 밝혔고, 표결 직전 '찬성표 33명'을 공언하며 탄핵 분위기를 형성했다.
당시 야권·무소속 의원이 172명인 상황에서 탄핵안 가결정족수인 200표를 위해서는 여권에서 최소 28명의 찬성표가 필요했는데, 여권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62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반면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서는 '캐스팅 보트'를 쥔 친한(친한동훈)계가 탄핵 가결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탄핵안 가결에는 최소 여당 몫 8표가 필요했는데, 20명 안팎으로 가늠되는 친한계 규모를 감안할 때 우려할 만한 수준의 이탈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여권 안팎에서 제기됐다.
실제 계엄 사태 초기 친한계를 중심으로 탄핵 찬성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지만, 한 대표가 이날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이후 사실상 탄핵 반대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이들도 '탄핵 반대' 당론을 따르기로 결정한 모습이다.
탄핵 추진의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과 그 이후 대통령의 대응도 여권의 움직임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이른바 '태블릿 PC' 사건을 필두로 '국정농단'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전국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거듭됐고, 갈수록 고조된 탄핵 여론은 여권에 큰 부담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2016년 10월 25일과 11월 4일 두 번에 걸쳐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거취 문제는 거론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여권의 '질서 있는 퇴진' 요구를 거부했다. 결과는 탄핵이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의 빌미가 된 '비상계엄 사태'는 그 충격파가 8년 전 '국정농단' 사태에 견줘 결코 작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국회 결의로 약 6시간 만에 비상계엄이 공식 해제됐고, 여당은 '비상계엄은 위헌·위법'이라는 입장을 밝힌 한동훈 대표를 중심으로 수습책 마련에 돌입하며 야권과 여론의 압박을 방어했다.
이후 윤 대통령은 계엄 사태 나흘 만인 이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과하고, 사실상 자신의 거취를 당에 일임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가 압박한 '조기 퇴진'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한 것으로 해석됐다.
8년 전과 다른 여권 전반의 대응은 '박근혜 탄핵 트라우마'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보수층에서는 2016년 당시 여권 일부 세력이 탄핵에 동조하면서 정권을 내주고, 이후 분열·반목이 거듭되면서 총체적 '암흑기'를 맞았다는 인식이 공유돼있다.
이번에 윤 대통령이 다시 탄핵당할 경우 현재 유력 대권주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정권을 내주고, 보수 진영은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아울러 계엄 사태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완전히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으로 급작스러운 권력 공백이 발생할 경우 정국 불안이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여권 내 형성된 것도 8년 전과 다른 결과의 배경으로 꼽힌다.